말딸 괴문서) "황제는 짊어진 소임을 위해 혼인한다." (완전판) | 유머 게시판 | 루리웹 (2024)

말딸 괴문서) "황제는 짊어진 소임을 위해 혼인한다." (완전판) | 유머 게시판 | 루리웹 (1)

"...제가 학생회장인 것을 고려하여,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저를 먼저 호출치 않으셔서 이번의 호출에 대해 긴장하였습니다만... 하실 이야기라는 것이 그것이었습니까?"

1분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침묵에 빠져 있던 심볼리 루돌프가 마침내 침묵을 깨고 자신의 앞에 있는 부모에게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그래. 너도 이제 URA 파이널즈를 남겨둔 몸. 슬슬 약혼을 할 시기가 되었다. 상대는 너의 비원, 나아가 우리 집안의 비원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남자다. 너도 마음에 들어할..."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루돌프의 인생 첫 반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여자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루돌프 역시도 그런 자신의 부친과 모친을 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마 뒤 루돌프가 계속해서 말했다.

" 지금은 URA 파이널즈를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약혼을 함으로서 경기가 아닌 다른 곳에 시선과 주의를 돌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도 제 주의가 다른 곳으로 돌아가 저의 상승불패의 기록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으실 터. 뭣보다 제 도전은 URA 파이널즈가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경기를 치루어 나가며 국사무쌍의 위상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루돌프의 모친이 입을 열었다.

"약혼을 한다고 해서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아니란다. 지금은 약혼만 하고서, 네가 은퇴를 할 때에 결혼을 하면 되잖니?"

"다른 이들이 약혼을 한 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소녀는 그것이 걱정입니다. 세간의 시선이 제가 원치 않음에도 저를 은퇴로 이끌 수가 있습니다."

명문가 우마무스메의 약혼이란, 모두 그렇지는 않으나 보통 은퇴 직전에나 이루어진다. 루돌프는 그것을 거론하며 약혼에 대한 자신의 '핑계' 논리를 보강했다. 그 말에, 다시 그녀의 부친이 말했다.

"이유가 그것 뿐만은 아닐 터."

그 말이 나오자, 지금까지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루돌프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구부러졌다.

"너의 트레이너 때문에 약혼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겠지."

루돌프는 침묵했다. 부친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를 연모하고 있잖느냐."

'아닙니다.' 라고- 루돌프는 부정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똑부러지게 대답하던 루돌프는 지금 이 순간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을 곧 긍정의 뜻이라 받아들인 루돌프의 부친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훌륭한 남자다. 너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었으니까. 그래서 나 역시 그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 뿐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루돌프의 눈썹이 조금 더 구부러졌다. 부친은 그것을 무시하고서 계속해서 말했다.

"상대측에도 약혼담의 뜻이 전해졌다. 트레이너에게는 맞선이 있다는 뜻을 밝히고 열흘 뒤 본가로 와라. 그가 진정 훌륭한 트레이너라면 이 결정을 이해해 주겠지... ...열흘 후,이 곳에서 너를 네 예비 약혼자와 대면시킬 것이다. 세간의 시선 문제는 신경쓰지 마라. 약혼은 아키카와 이사장과의 상의를 통해서 비밀적으로 진행할 것이고, 트레센의 주도하에 철저히 통제될 것이다. 물론 우리 역시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야. 자세한 일정은 추후 통보하마."

"...정녕 미루거나 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불가하다."

루돌프는 자신의 입 속에 말이 맴도는 것을 느꼈다. '약혼을 다시 생각해 주실 수 없느냐. 트레이너를 한 번만 만나봐 주실 수는 없느냐. 나를 G1 십관이라는 불후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려준 이다. 우리의 비원에 더할 나위 없는 인재이다. 분명 마음에 드실 것이다. 나와 그 어떤 연도 없던 예비 약혼자보다는 트레이너가 자신의 옆자리에 더 걸맞지 않느냐. 어찌 내 의사는 묻지 않고 이렇게 정하시느냐.'... 그런 말들이, 끊임없이 입 안에서 회오리쳤다.

루돌프가 생각하고 있던 말들을 알고 있는지, 그녀의 부친이 말했다.

"황제의 혼인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황제는 사랑을 위하여 혼인치 않는다. 짊어진 소임을 위하여 혼인을 한다. 너라면, 우리의 뜻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그 말을 끝으로, 부친은 루돌프에게 물러나 보라는 듯한 손짓을 보였다. 루돌프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서는,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그와 모친의 앞에서 물러났다.

단 한 번도 양친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5살에 불과했을 때부터 제왕학을 가르쳤을 때에도, 목표를 부여하고 혹독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게 했을 때에도, 그녀는 자신의 양친을 원망했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으로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트레센으로 돌아온 뒤, 루돌프는 한 동안 자신의 약혼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함구했다. 그녀는 그저 학생회 업무와 훈련에만 집중했다. 약혼 문제로 심란했던 만큼 그녀는 그 심란함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 일하고 또 일했고, 뛰고 또 뛰었다. 본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왔냐고 묻는 트레이너에게도 그저 원론적인 대답만 하고서, 일부러 그에게서 눈길을 거둔 채로 그저 자신의 일, 자신의 달리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5일간 업무와 훈련에만 열중하던 루돌프였지만, 업무를 하면 할 수록, 훈련을 하면 할 수록 심란함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점점 더 약속기한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그녀의 집중력은 흐뜨러졌고, 예정된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만 몰려왔다. 그리고 때 마침 그 때에, 달리기를 하던 자신을 지켜보는 트레이너가 눈에 밟혔다.

"...윽!"

그 순간 달리기를 하던 루돌프의 다리가 꼬였다. 지난 3년간 한 번도 넘어진 적 없건만, 황제는 이 순간에 이르러 넘어졌다.

"루돌프!"

루돌프가 넘어진 것을 본 트레이너가 황급히 달려왔다. 트레이너는 넘어진 루돌프의 옆에 이르러 무릎을 굽히고 괜찮느냐고 물으며 그녀의 다리와 몸상태를 살핀다. 루돌프는 고개를 들고 그런 트레이너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걱정어린 표정, 진심으로 걱정어린 눈. 떨리는 손과 흐르는 식은 땀. 그 남자는 언제나 그러했다. 언제나 자신보다 자신의 우마무스메를 우선시하는 남자. 자신의 우마무스메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남자. 자신의 우마무스메를 진심을 담아 보살피는 남자. 남에게 줄 수 없는, 절대 갈라지기 싫은 자신의-

"...트레이너."

"응?"

트레이너는 그렇게 반응한 뒤 이렇게 되묻는다.

"말해줘. 루돌프. 어디가 아파? 다리 쪽이야?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당장 구급차를 부를까?"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트레이너에게, 루돌프가 애써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괜찮다. 할 이야기가 있다. 트레이너실로 잠시 돌아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루돌프를 트레이너가 부축하려 했다. 루돌프는 트레이너에게 괜찮다고 하려 하였으나, 이내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트레이너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었기에, 그녀는 트레이너가 자신을 옆에서 부축하는 것을 거부치 않고 그와 함께 트레이너실로 돌아갔다.

트레이너실에 이른 뒤, 루돌프는 트레이너의 배려에 따라 먼저 의자에 앉았다. 그런 뒤 트레이너가 내온 차가 자신의 앞에 놓이자, 그 차와 트레이너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루돌프가 좋아하는 차지?"

트레이너는 약하게 미소지으면서 그렇게 되물었다. 루돌프는 그 찻잔에 손을 뻗어 온기를 느끼면서, 마찬가지로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응. 고맙다."

트레이너는 자신이 마실 차도 준비한 뒤 루돌프를 마주보는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러면서 루돌프에게 먼저 질문을 했다.

"정말 괜찮은 것 맞아? 지금이라도 상태를 자세히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정말로 괜찮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 트레이너."

루돌프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너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보였다.

"정말로... 문제가 없어?"

루돌프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무슨 의미인가?"

트레이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대화가 많았는데, 본가에서 돌아온 뒤에는 나와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잖아. 오직 훈련에만 집중하고... 그 뿐이 아니야. 에어 그루브나 나리타 브라이언에게 들으니 최근에 네가 학생회 업무에서 상당히 무리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뭔가 걱정거리가 있다면 나에게 말해줘. 본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루돌프는 미소를 거두었다. 그런 뒤,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의 운을 띄웠다.

"안그래도... 그와 관련한 말을 할 참이었다. 부디 집중해서 들어다오. 트레이너."

루돌프는 본가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말했다. 자신에게 약혼 예정자가 생겼다는 이야기, 자신은 극구 반대했으나 부친과 모친은 자신의 반대를 물리쳤다는 이야기, URA 파이널즈 전, 지금으로부터 1주일여 뒤에 본가에서 대면하여 약혼을 할 예정이라는 이야기. 그 사이에 트레이너에게 사실을 말해 두라는 언질을 들은 이야기를.

트레이너는 그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말 없이 진지하게 경청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루돌프가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할 때 까지, 그는 말이 없었다.

"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트레이너... 나는... 너와의 관계를 정리하기가 싫다.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약혼자와의 혼인 따위보다 네가 황제의 길에 동반자가 되어주었으면..."

루돌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는 말끝을 흐리면서,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얼마 뒤, 그녀가 들고 있던 찻 잔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런 루돌프를 보면서 트레이너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루돌프..."

미안함과 착잡함의 감정이 가득 실린, 자신의 이름을 읊조리는 그 목소리에, 루돌프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미안하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 팬 감사제 이후 너와 다른 이들에게 위로받은 뒤로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모든 이야기를 하고 나니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졌다."

트레이너는 그런 루돌프를 보면서 가슴이 아파옴을 느꼈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음울한 눈빛을 보이면서 무언가를 생각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루돌프는 무언가를 결심하고서는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서 눈물을 훔치며 트레이너에게 부탁을 건넸다.

"트레이너. 나와 함께 그 날 본가에 방문해 줄 수 있겠는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던 트레이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을 차렸다. 그가 되물었다.

"본가를?"

"...그래. 그 날 내 양친과 약혼 예정자에게 그대를 보이면서 약혼에 관한 대담을 무르고 싶다. 내게는 오직 당신밖에 없다고 선언하고서, 그대와 함께 길을 걷고 싶다. "

승부수.

오늘이나 내일처럼 평범한 날에 트레이너를 데리고 가봐야 원론적인 대답만 되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약혼담이 이루어지는 날에, 자신이 약혼 예정자에게 실례를 저지르는 것을 무릅쓰고그렇게강경하게 나선다면 분명 그들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터였다. 그렇지 않더라도, 체면을 생각한 그들이 적당히 약혼담을 연기하거나 혹은 아예 상대측에서 약혼을 파기해 버릴 수가 있었다. 가문간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루돌프는 이미 각오한 바였다. 그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 보다 훨씬 힘들 길도 걸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진심을 보인다면 그들도..."

"미안해. 루돌프."

루돌프의 말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에 트레이너가 사과의 말을 하자, 루돌프의 얼굴이 경색되었다.

트레이너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그런 루돌프에게 말했다.

"3일전쯤에 정해진 건데, 하필이면 그 날... 아키카와 이사장님과 중요한 면담이 있어. URA 파이널즈 이후 개인처신 문제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면담인데다 이사장님이 나와 만날 시간이 그 때 밖에 없기 때문에빠지거나 미룰 수가 없어. 나도 마음같아서는 너와 함께 가고 싶어. 아니, 사실 네가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그 생각을 먼저 떠올렸어. 하지만... 정말 미안해. 날짜가 바뀌지 않는 이상..."

누적된 피로 탓에 팬 감사회에서어이없게 실추했을 때에도 지어보인 적이 없는 몹시 어둡고 무거운표정. 그것이 지금의 루돌프의 표정이었다.흔들리는 동공으로 트레이너를 보는 루돌프. 그런 루돌프를 보는 트레이너. 둘 사이에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루돌프는 말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이번 한 번만 자신을 도와달라고. 면담을 어떻게든 연기하고 자신을 따라 본가로 와달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이 남자는 본인의 모든 것을 본인의 황상(皇上)을 위하여 희생해 왔다. 잠도, 식사도, 여가도, 인간관계도. 그 모든 것을. 여기서 또 다시 자신의 투정을 위해 그에게 희생을 강요하기가싫었다. 그를 사랑하기에.

긴 시간이 흘렀다. 루돌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이기적이었다. 5일밖에 안남은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으니... 차라리 처음부터 말했다면 기회라도 있었을 것을... 내가 일을 망쳤구나. 내가 일을 망쳤어..."

루돌프의 귀가 축 처졌다.그런 루돌프에게 트레이너가 힘을 쥐어짜듯 말한다.

"루돌프의잘못이 아니야...!"

루돌프는 애써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위로할 필요 없어. 트레이너.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부친께 일정을 미루는 것을 이야기해 보마. 일정을 미루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것이 있으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때는 나와 함께 본가로 가자."

트레이너는 루돌프가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최소한 지금은 그 눈물을 닦아줄 수가 없었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응. 꼭 그러자."

---

루돌프는 소망했다. 부디 약혼담의 날짜가 단 하루라도 미루어 지기를. 그리하여 자신이 트레이너와 함께 본가로 갈 수 있기를. 하지만 그녀의 바램은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부친의 목소리에 의해 무참히 깨졌다. 처음으로 데뷔전을 했을 때, 처음으로 클래식 삼관에 도전하여 승리했을 때, 마침내 삼관을 달성했을 때... 그 기뻤던순간에 자신을 축하해 주던 그 목소리는 이제는 자신의 작디 작은 바램을 부쉈다.

그래. 일정은 연기되지 않았다. 부친은 일정을 강행키로 했고, 루돌프에게 그 날 꼭 본가로 돌아오라고 재차 언질했다.

루돌프는 그 날 희망을 잃었다. 그나마 이전까지는 심란함을 잊기 위해 일과 훈련에 몰두하였으나, 이제는 의욕이 모두 사라진 탓에 그녀의 훈련, 업무 효율은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회장.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얼마 뒤 경기도 있으니 오늘은 먼저 들어가 보심이..."

에어 그루브가 그렇게 말하니 루돌프는 군말 없이 그 말을 따랐다. 평소같았다면 거절하고 계속 남아서 일을 보았겠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자신이 계속 일을 해보아야 민폐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루돌프는 트레이너실을 찾아갔다. 약혼이 이루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그의 얼굴을 봐두고 싶었기도 했지만, 생각이 바뀐 탓도 있었다. 자신이 무릎을 꿇고 아키카와 이사장에게 간언한다면 그의 처신과 관련한 대담이 조금이라도 미루어 질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도, 약혼담날이 아닌 다른 날에 트레이너를 데리고 가서 어떻게 해서든 부모의 마음을 돌이켜 보는 시도를 해 볼 수도 있었다. 성공 가능성은 희박했으나 뭐라도 해야 했으니, 그에게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마침내 트레이너실의 앞에 이른 루돌프는 약하게 심호흡을 하고서 트레이너실의 문을 두드리려 했다. 그런데 직전, 트레이너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트레이너의 목소리였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면서 루돌프는 자신의 귀를 문에 대었다. 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예. 루돌프의 아버님. 예. 알고 있습니다. 루돌프에게는 그 날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루돌프의 가슴이 철렁였다. 통화의 대상도 대상이지만,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진실을 모른 척 하기 위해문에서 귀를 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그녀의 귀는 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유는 아키카와 이사장님께서 주신면담 알리바이를 이용했습니다. 개인처신에 관한, 아주 중요한대담이 있다고요."

아니야.

"넘어갔느냐고요? 예... 그녀는 제가 댄 이유를 납득해 주었습니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 보자면 객관적으로는 빈약한 사유였지만, 약혼 문제로 인해 마음이 심란했던 탓인지 그런 사유도 잘 먹혀들더군요.게다가... 저에게 더 이상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겠지요. 지금까지 제가 치루어 온 희생들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어.

"예. 이사장님께서는 루돌프가 저와의 대담에 관해질문을 하러 온다면 적당히 말을 맞춰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URA 파이널즈 준비 마무리및 해외 출장 문제로 그 날이 아니면 안된다고요. 저는 분명 뛰어난 트레이너이고 루돌프도 국사무쌍의 우마무스메이나이사장으로서 두 사람을 위해서 수만명, 수십만명의 미래가 걸린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그렇게 답변을 준비하셨는데, 루돌프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나 봅니다. 찾아오지않았다더군요."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어.

"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루돌프를 위해서입니다. 당장은 괴롭고, 마음이 아프지만... 감내하겠습니다."

그래선 안돼. 당신이 그래선 안돼.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는 자신과 함께 해야 했다. 자신과 함께 본가에 가서 자신이야말로 황제의 옆자리에 어울리는 남자라고 당당히 주장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다.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의 부친과 밀통을 하면서. 이사장과 말을 짜맞추면서.

어째서 내게 그런 짓을 하는거지? 난 당신을 믿었는데. 당신이라면 나와 함께 평생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내가 겪는 고통을 함께 부담해 주면서 마치 자신이 겪는 고통처럼 아파해 주고,내가 느끼는 기쁨을 함께 누려주면서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지금껏 쌓여왔던 트레이너에 대한 신뢰, 우정, 애정에 금이 가는 느낌을 받으면서, 루돌프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방문을 부수고 쳐들어가서 트레이너의 멱살을 잡고 자초지종을 캐묻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빠져나갔다. 그리고 머지 않아 의욕도 빠져나갔다. 모든 것이 틀렸다. 눈물이 흘러 나왔다.

모두가 우러러 보던 황제의 신위는 그 자리에서 꺾였다.

"...밖에 누군가가 온 것 같습니다. 끊겠습니다. 예."

트레이너는 전화를 끊은 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기척이 느껴지던 트레이너실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짠 물 몇 방울 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루돌프?"

다음 날, 루돌프는 1주일간의 가정방문계를 냈다. 명목은본가로부터의 호출이었다. 명목 자체는 틀림이 없었기에 가정방문계는 곧 수용되었다. 그 사이 트레이너로부터 몇 번인가 전화가 걸려왔으나 모두 무시하고, 나중에는 아예 차단을 했다. 그가 자신을 직접 만나려 하기도 했지만 철저하게 피했다.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를 증오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트레이너가 자신을 배신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여전히 증오와 더불어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레이너를 보았다가는 자신의 트레이너에 대한 증오가 무슨 일을 일으킬 지 자신도 장담할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트레이너에 대한 애정 역시 여전히 품고 있던 그녀는 트레이너를 피하기로 했다. 그것이 그녀의 애증의 형태였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루돌프는 사복을 입고 자신의 정체를 가릴 가발이며 모자, 안경을착용했다. 그러고서는밤에 몰래 기숙사를 나왔다. 타즈나와 합의된 바였는데, 상승의 황제의 거동을 찍기 위해 트레센 근처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대기하는 카메라맨이나 기자들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최근에는 도가 지나쳐서 허가받지 않은 파파라치들이 트레센 내부로몰래 들어오기도 했다. 대부분은 트레이너나 뱀부 메모리에 의해 가로막혔지만, 그래도 몇 번인가 사진이 유출된 바가 존재했다.

그 생각을 하니 트레이너가 그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하던 것 역시 생각났다. 하지만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그의 얼굴을 지웠다.

그녀는 떠나기 전, 자신의 트레이너실이 있는 건물을 보았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원래대로라면 언제나 늦게까지 일하는 그의 존재로 인해 불이 켜져 있어야 정상이건만, 그도 자신의 일로 지친 것 같았다.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바라보고 싶었다. 조금은, 봐두고 싶었다.

이른 아침, 그녀는 본가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었다. 약혼을 맺고 트레센으로 돌아온 뒤에는 URA 파이널즈 때까지 그저 의무적인 훈련만 진행하고, URA 파이널즈 뒤에는 결과가 어떻던지 간에 은퇴. 그걸로 모든 걸 끝낼 작정이었다.

사실, 본가도 내심 그걸 원하고 있을 터였다. G1 십관, 전무후무한 전설을 만들어 내었으니 미래를 위한 기반은 충분하다고 판단. 슬슬 레이스 쪽에서는 은퇴하고 정치 쪽으로 적을 옮기길 원하고 있겠지.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 시점서 무리하게라도 약혼을 진행하려는 것이겠지. 그것이 루돌프의 본가의 의중에 대한 생각이었다.

루돌프는 약하게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꼬리를 손질했다. 이 약혼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래도 약혼자에게 완벽치 못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약혼자를 첫 만남에서부터 완벽히 압도하여 자신의 의중에 고분고분하게 따를 인간으로 만드리라.

'...그는... 아니었지.'

생각해 보자면 트레이너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압도적인 달리기, 자연스레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는 위압감,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그는 루돌프에게 굽신거리며 그의 뜻을고분고분히 따르는 이는 아니었다. 자신이 홀로 무리하는 것 같으면 무리치 말라고, 자신이 뒤를 받쳐주고 있으니 조금은 의지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남자였다.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 같으면 그에 대해 당당히 반대 의견을 내고, 나아가그에 대한 보다 개선된 수정안을 내는 남자였다. 루돌프의 뒤에 서는 남자가 아니었다. 루돌프의 옆에서 그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 주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런 남자는 자신을 떠났다. 이제 그런 남자는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이게 최선이었다.

어째서 그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부친으로부터 압박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그 스스로가 이것이 자신-루돌프-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여 부친에게 협력한 것일까. 둘 모두 가능성은 있었지만,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모시러 왔습니다.아가씨."

루돌프는 역 앞까지자신을 모시러 나온 기사가 몰고 온, 택시로 위장된 차에 몸을 싣었다.택시기사로 위장한 운전기사로부터,루돌프는 이런 말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미리 전해들으셨겠지만,기자들이며 팬들이 아가씨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는 상황이다보니 트레센에서부터 모실 수는 없었습니다.그나마 여기서부터라도 이렇게나마 모실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알고 있어."

그녀가 가발이며 안경이며 모자로 완전무장을 하고서 트레센을 나온 까닭 역시도 바로 그 것이었기에, 그녀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기자들의 공세를 생각하니 문득 또 다시 트레이너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자신이 이렇게 본가로 가고 있는 동안 트레센에서는 자신의 거취를 묻는 기자들이 자신의 트레이너를 들들 볶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고 있으니까.그런 식으로 자신을 배신한 그가 골탕을 먹고 있는 꼴을 상상하니 약간 웃음이 나왔지만,그 웃음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지독한 외로움에, 지독한 고통에. 그녀의 웃음이 뭉개졌다.

본가 근처에 이르러, 루돌프는 차에서 내렸다. 본가로 직행하기가 쉽지 않았기에그녀는 그 곳에서부터걸음을 걷기로 했다.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그래도 여기에 까지 이르니, 조금은 진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망가져 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아직은 그런 자각이라도 드는 것을 보면, 자신이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뒤 그녀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후문을 통해 조심스레 본가에 들어섰다. 그 역시도 혹여라도 매복해 있을 지 모르는 기자들을 대비한 행동이었다.

본가에 들어서니,집사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무사히 제 시간에 도착하셔서 다행입니다.아가씨."

"고마워요... 집사."

이후 루돌프는 본가의 절차에 따랐다. 가발을 벗고,사복을 기모노로 갈아입고, 제대로 단장을 하고,조금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다가자신을 부른양친을 만나뵈었다.양친은 루돌프가 얼마 전에 걸어온 일정 연기 요청 이후로 별 다른 저항 없이 자신들의 의중에 따라준 것이 만족스러웠던지 드물게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사장께 이야기 들었단다.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 번도 상담을 하러 오지 않고 자신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 그래서 너를 다소 걱정을 했는데,네가 이렇게 우리 뜻을 따라주니 고맙구나."

그래. 루돌프는 트레이너 뿐만이 아니라 이사장의 전화도 차단해 버렸다. 그녀가 자신의 트레이너의 배신에 협조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약혼 이후 본가의 뜻에 따라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말이야 섞겠지만 최소한 당분간은 그녀의 얼굴을 보기도 싫었다. 그래서 가정방문계도 타즈나를 통해서 제출했다.

모친의 말에 루돌프가 답했다.

"아닙니다.황제로서...소임을 짊어진 자로서,응당 따라야 할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이전에 했던 말을 인용했다.그러자 그의 양친이 나란히 말했다.

"생각을 그리 정리해 주니 다행이다."

"분명 너도 약혼 예정자가 마음에 들 게다."

'마음에 들 게다.'.처음 약혼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부친이 입에담았던 말.그처럼 짜증나는 말이 없었다. 누가 상대건간에 자신의 마음에 들 리가 없건만.

'당신의 마음에야 들겠지요...'

문득,약혼 예정자에게 생각이 미쳤다. 지금껏부친은'약혼 예정자가 있다.마음에 드는 인물일거다,우리 가문과 너의 비원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만 말했을 뿐 그가 정확히 어느 가문의 누구인지,무엇을 하던 이인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루돌프 본인 역시도 '약혼 예정'이라는 말을 들은 뒤에 혼이 나가다시피 했고, 그 뒤에는 어떻게든 약혼을 막으려고만 했기 때문에 정작 약혼 예정자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ㅂㅈ 못했다.

직접 만나서 확인해 보라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를 만나기 전에최소한 어느 집안 사람인지는 들어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무심하게라도 대화를 진행할 것 아닌가.

"약혼자에 대해 알려주신 바가 적습니다.어느 가문의 사람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메지로 가문의 사람입니까?"

"집안 자체는 한미... 실례,범상하다.하지만 개천에서 난 용이라 할 만한 엘리트다.성실하고,심지굳고, 모범적이지.우리의 가문과 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남자다.그렇기에 그를사위로 들이는 것이다."

루돌프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명문가의 자제도 아니라니.그럴 것이라면 자신의 트레이너를 혼인 상대로 생각해 주면 되지 않았는가?자신의 트레이너야 말로 모든 면에서 자신의 길에 도움이 될 만한 이였다.자신이 걸어온 가시밭길에서 자신이 무너지지 않게지탱해 준 이였고,앞으로의 길에서도 자신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이였다.함께 고통을 나누고,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던 이였다.심지어는'황제를위한 일'이라는 부친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자신을 위해 자신을 배신하기 까지한 남자였다.

그런데,어째서 그를 놔두고 다른 이를 선택했는가. 그가 무엇이 부족해서? 그가 무엇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의 무엇이 문제라서...

"시간이 되었다.이제 응접실로 가서 그와 그 쪽의 양친을 만나도록 하자."

루돌프는 실소,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서 치솟는 메스꺼움을 애써 억누르면서 자신의 양친에게 고개를 숙였다.그런 뒤,두 사람과 함께 응접실로 향했다.되도록이면 천천히 걸으면서,지난3년간 있었던 그와의 추억을 애증으로 들끓는 마음으로 되새기며.

응접실에 들어서기 전,응접실 안쪽에서부터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음이 잘 되어 있는 곳인 탓에 우마무스메인 본인의 귀에도잘은 들리지 않았지만,대화를 나누는 목소리였다.아마도 범상한집안이니만큼 이 곳의 여러가지가 신기할 터.그렇기에 그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것 같았다.루돌프는 확실히 명문가 집안은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예의를 갖추고 기다려도 모자를 판에 수다라니. 심정은 이해하나 초면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다시금 트레이너를 떠올렸다. 그러면서차라리 그가 자신의 약혼 예정자 대신 저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건 간에, 자신의 마음을 배신했건 무엇이건 간에저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에게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방 안에서 들려오는목소리 중 하나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얘도 참.이런 명문가 아가씨랑은 어떻게..."

"그녀의 달리기를 계속해서 옆에서 보고 싶었다고 몇 번이나..."

"...그 쪽 아가씨가 널 선택해 준게 아무리 봐도 의아해서 그렇지..."

"넌 내가 네 엄마한테 잡혀사는 것처럼 며느리한테 잡혀살겠다..."

"당신 지금 뭐라고..."

루돌프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의 군집을 향해 자신의 귀를 쫑긋거렸다. '일본 더비'에 도전했을 때를 상회하는 집중력이 루돌프의 귀에 몰렸다. 마침내, 그녀는세 명의 목소리 중 자신에게 익숙한 느낌의 젊은 남자의 목소리를 구분해 냈다.

"...세간의 이목을 의식한 상대측 아버님과 이사장님 탓에 비밀로 약혼하게 되어,할 수 없이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에게 어찌나 실망했는지 전화조차 받지 않고 있어요.평생에 걸쳐 속죄해야 하는만큼 잡혀 살게 되어도 감내 해야..."

그 말을 들은 순간,루돌프는 자신의 체면 같은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양친을 앞질러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그녀의 달음박질 속도는,기모노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설적인 우마무스메 이클립스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문을 연 그녀의 귀에 들려온 말은-

"...안녕.나의 애마."

응접실의 문을 연 루돌프의 앞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작년 재팬컵에서 1착을 한 자신이 지금까지 함께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의미로-더불어 아리마 기념에서도 반드시 함께 승리하자는 의미로선물했던향수를 뿌린 채로,자신이 지난 크리스마스에 연정을 담아 선물한 넥타이를 맨 채로,자신을 향해 미안함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서 있었다.

루돌프는 얼마 동안 가만히 있었다.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난 며칠간 잠을 설친 탓에 자신도 모르게 기차에서 잠들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좌절감으로 인하여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의문이 끊임없이 그녀의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머지 않아 그녀의 의심은 끝이 났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오며 건넨 사과의 말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정녕 현실이라고 믿게했다.

"...미안해. 루돌프..."

자신의 귓가에 들리는 그 목소리가 거짓일 리가 없었다. 그 목소리가 망상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루돌프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에게로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아니,안겼다기 보다는 그를 안았다. 자신이 달려든 충격으로 인해휘청이는 트레이너가 쓰러지지 않게 한쪽 손으로 그의 허리를 받쳐주면서도,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루돌프..."

트레이너가 루돌프의 이름을 읊조렸다.루돌프는 그런 그의 가슴을 자신의 나머지 한 쪽 손바닥으로 팍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우마무스메의 힘과 울분이 함께 실린 그 손바닥은 매섭기 그지 없어, 지금까지 남자가 겪었던 어떤 물리적 통각보다도 아팠다. 하지만트레이너는 그 고통을 참아내면서 그저 맞아도 싸다고 여겼다.

",...거짓말을 한건가...처음부터 말해줬으면...나는...나는 당신이 나를 버린 줄 알고..."

그녀는 메어버린 목을 쥐어 짜내며 그런 말을 한다.트레이너는 그런 루돌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미안...너도 알다시피 너한테 집중되는 시선 문제 때문에 모든걸 비밀로 해야 했어.그도 그럴 것이 너는 상승불패의 황제 폐하잖아.언제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갈 지 모르는 통에 아예 처음부터 모든 걸 비밀로 하기로 했어.네 아버님...장인어른께서 먼저 내게 계획을 전달해 주셨고,나도 너를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그게 말이 되는 계획이라고 생각하나!애초에 너무 어설픈 계획이다!변수도 많고,리스크도 너무 컸어!뭣보다..."

울분을 담아 외친 루돌프는 다시금 트레이너의 트레이너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쳤다.트레이너는 손바닥을 맞기 전 긴장을 하면서 숨을 들이 마쉬었지만,이번의 주먹은 아까보다 훨씬 약했다.

루돌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은...어쩌라고..."

루돌프의 어깨가 들썩였다. 트레이너는 자신의 가슴 한 켠이 아려옴을 느끼면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면서 느꼈던 통증이, 그녀를 찾아갔음에도 그녀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던 때에 느꼈던통증이 다시금 그의 심장을 감싸 쥐었다.

트레이너가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루돌프.아무리 세간의 눈길이 문제라 하더라도 이런 말도 안되는 계획에는 반대했어야 했는데,너의 추가 트레이닝에는반대할 수 있어도 장인께는 도저히 반대하지 못하겠더라.게다가 워낙에 진지하게 계획을 말씀하셔서..."

그러면서 자신의 장인될 이를 곁눈질했다. 루돌프의 부친은 한 차례 헛기침을 한 뒤 기존의 표정을 유지한 채로, 하지만 눈빛에는 머쓱한 감정을 담은 채로 이렇게 대꾸했다.

"아, 아키카와 이사장이 준비한 계획일세. 그녀가 모든 걸 자기한테 맡기면 된다고 해서..."

아키카와가 아무리 대범하고 그릇이 크다고 해도, 그 나잇대 소녀다운 사고방식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그릇된 판단이었다.

루돌프는 뒤 쪽에서 들려온 부친의 말을 듣고서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누가 우리 이야기를 퍼뜨린다고 이런 계획을..."

이번에는 트레이너가 장인을 감싸줄 차례였다.

"실수한다는 자각없이 우리 약혼 이야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어.테이오 라던가.너도 걔 입 얼마나 가벼운 지 알잖아."

루돌프는 마지 못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찌미 한 잔이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놔 버리는 성격이지..."

"실제로 작년에 테이오가, 루돌프 네가 학생회실에서 잠결에 하던 잠꼬대를 듣고서 사방팔방에 다 이야기 했던 거 기억나지?이번에도 그러다가 자칫 잘못해서 기자들한테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게 되면... ...물론 이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것이 잘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말이야..."

트레이너의 말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가 트레이너에게 더더욱 밀착하면서 그를 더욱 강하게 껴안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그래도 나는 너무 슬펐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에게 더욱 더 밀착하는 루돌프의 존재로 인해,트레이너는 자신의 가슴이점점 더 빠르게 뛰는 느낌을 받았다.그는 그녀와의 포옹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었지만,동시에 우선은 어떻게든 루돌프를 떼어내고 진정시켜야겠다는 모순적인 사고에 빠져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루돌프. 사과의 의미로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해줄게. 그러니 일단은 진정해줘. 다들 우리를 보고 계시잖아? 게다가 이제 양가 부모님께서도 서로 인사를 나누셔야 하지 않을까?"

그 말대로, 루돌프의 모친과 트레이너의 양친은 서로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둘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아직도 무안한눈빛을 보이고 있던 루돌프의 부친을 제외하고.

루돌프는 트레이너의 가슴에 파묻었던 고개를 살짝 들고서 트레이너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눈과 트레이너의 눈이 마주쳤다. 며칠만에 상대의 눈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것이던가.루돌프의 얼굴이 옅은 홍조를 띄었고, 트레이너의 얼굴 또한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트레이너에게 이렇게 물었다.

"정말 뭐든지 들어줄 거야?"

평소의 '황제'이자 '학생회장'심볼리 루돌프와는 미묘하게 다른 그 목소리와 어조에, 트레이너는 루돌프의 이면을 보게 된 느낌을 받는 동시에 그녀가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트레이너는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면서 긍정의 뜻을 표했다.

"그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인데."

마침내 루돌프가 아까보다 더욱 붉어진얼굴로 자신의 부탁을 전했다.

"...둘만 있을 때는 '루나'라고 불러줘."

트레이너도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옛날 어렸을 적에는 심볼리 루돌프라는 이름이 아니라 '루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그런 루돌프의 부탁에 트레이너는 미소를 지으며 회답했다.

"응. 그럴게."

"약속이야?"

"약속할게."

그제서야, 루돌프는 트레이너의 몸에서 몸을 살짝 떼어냈다. 두 사람 모두 내심 아쉬움을 느꼈으나, 그래도 계속해서 안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그 아쉬움을 참아냈다.

두 사람이 몸을 떼어낸 뒤,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음을 깨달은루돌프의 부친이 한 차례 헛기침을 하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크흠. 이렇게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저희 딸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세간의 관심을 받는 데다가 바로 얼마 뒤에 URA 파이널즈 예선이 존재하여 세간의 이목이 최대한 미치지 않게끔 이 일을 진행코자 했습니다. 사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 계획 자체가 제가 세운 계획은 아니고..."

루돌프의 부친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에 루돌프의 모친이 미소짓는 얼굴을 유지하면서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러자 루돌프의 부친은 변명을 곧바로 끝내버렸다.

"...제가 세운 계획이 아니더라도 그 계획을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서 진행한 것은 틀림없이 접니다. 그런데 이 계획이 저희 딸은 물론이고 아드님께도 상처를 주었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루돌프의 부친은 트레이너와 그의 양친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전달했다. 이후 루돌프의 모친은 전혀 실례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상대측 양친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실까요."

양가간 약혼 및 향후 결혼에 대한 대화가 끝난 뒤, 양측 부모들은 부모들끼리의 대화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동안 심볼리 루돌프와 그녀의 트레이너, 아니. 그녀의 약혼자는정원을 거닐면서 따로 시간을 가지기로했다.

두 사람 모두 둘 만의 시간을 무척이나 원하고 있던 차였기에, 그러한 바가 결정되자마자 양가 부모들에게 인사를 올린 뒤 응접실에서 빠르게 물러났다. 그리고 마치 서로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손을 맞잡은 채로 심볼리가 저택 내부의 정원을 천천히 거닐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URA 파이널즈가 끝나고 결승의 열기가 조금 잔잔해 진다면 그 이후에 약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이후 1달 뒤 쯤에정식 결혼이라. 좋은 계획이네."

트레이너가 미소를 지은 채로 그리 말했다. 루돌프 역시도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응. 좋은 계획이야."

"신혼 여행지는 마음에 들어? 역시 작년에 뽑은 온천여행권을 쓰기 보다는, 그 온천여행권은 다른 때의 여행에 쓰고 신혼여행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루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그 곳이 좋다. 무엇보다 나와 당신이 함께 손을 맞잡고 얻어낸 온천여행권이니까... 신혼여행에는 그 온천여행권을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그녀가 자신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리 말하자, 트레이너의 얼굴이 다시 옅은 붉은 빛을 띄었다. 트레이너는 자신의 자유로운 한쪽 손을 사용하여 코를 매만지더니, 이내 아내될 사람의 말에 동의했다.

"루돌프가 그렇다면야... 그 곳으로 가자."

루돌프는 약하게 웃음소리를 내더니, 이내 트레이너의 손을 잡고 있던자신의 손에 약간 더 힘을 주면서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응접실에서 한 부탁,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트레이너는 응접실에서 루돌프가 자신을 올려다 보면서 한 부탁을 상기하고서는, 마찬가지로 약하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으로 루돌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에게 사랑을 담아 속삭였다.

"미안해. 루나. 그래. 그 곳으로 가자."

그 말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손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리고서는 서로를 두 팔로 안으며,상대의 입술에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을 전했다.

---⏰---

1달 뒤, URA 파이널즈 결승. 지금까지의 예선, 준결승을 모두 대차 승리로 마무리하고 결승에 진출한 심볼리 루돌프는 인기 2순위 미스터 시비, 인기 3순위 시리우스 심볼리를 모두 누르고 당당히 인기 순위 1번으로서 패덕에 섰다. 그 패덕에서 자신의 트레이너를 비롯한 만인의 응원을 받은 심볼리 루돌프는 이후 치루어진 결승에서 미스터 시비와 시리우스 심볼리 둘을 상대로 '황제의 신위'를 보여주며 승리, 자신의 옥좌를 공고히 했다.

경기가 끝난 뒤, 루돌프는 수만명의 관중과 트레센의 수 많은 참관 우마무스메들, 경기에 직접 뛰었던 다른 라이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트레이너에게 달려갔다. 트레이너는 루돌프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 지를 예상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받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트레이너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루돌프는 트레이너의 품에 곧장 뛰어들어갔다. 그것은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간의 포옹이 아니라, 영락없이 연인과 연인간의 포옹이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을 향해 경기장의 모든카메라맨들이 자신들의 렌즈를 집중시키며 그 놀라운 광경을 담아냈다.트레이너는 그 광경을 보고서는 '아이고, 그렇게 거짓말까지 치면서 약혼을 숨기려 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사진이 찍힌 것을 되돌릴 수도 없었기에자신에게 안긴 그녀를 그대로 계속해서 안아주었다.

얼마 뒤, 자신들을 향해 점점 우마무스메들과 기자들이 몰려들자 트레이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루돌프...? 슬슬 떨어져야... 다들 지켜보고 있어."

"루나라고 불러줘."

"그건 둘 만 있을 때 하기로..."

"루나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안 떨어질 거야."

그 일 이후로 자신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일이 부쩍 많아진루돌프를 보며, 트레이너는 이렇게 귀여운 여인이 자신과 혼인을 한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루나. 정말 수고했어... ...사랑해."

루돌프, 아니. 루나는 한껏 웃음을 지은 채로 트레이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도 사랑해, 트레이너."

---⏰---

모두가 루돌프의 URA 파이널즈 결승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그녀와 트레이너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에, 유일하게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신체의 자유의 부재 때문이었다.

"다행! 두 사람이 저렇게 서로를 아끼고 있으니 이사장으로서 흐뭇하기 그지 없네. 이게 다 본인의 계획 덕분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밧줄은 언제 풀어주는 겐가? 응? 응?"

그런 그녀에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든다.

"내일 있을 축하연때 까지만 참으시죠."

"거부! 이사장이 없는데 트레센이 하루라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당장 이 밧줄을 풀어주게, 부회장!"

"카시모토 리코 이사장 대리가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럼 저도 이만 회장님과 부군을축하드리기 위해 내려가 보겠습니다."

이사장에게서 멀어지려는 부회장이, 그녀에게 조언의 탈을 쓴 독설을 날린다.

"첨언하여, 다음에 이런 계획을 세우실 때는 제발 사람이 상처받지 않는 계획을 세우십시오. 골드쉽을 달리게 할 때는 잘도 계획을 세우시더니, 어째 더 퇴보하셨습니다. 삼류 로맨스 소설이라도 읽고 힌트를 얻으신 겁니까?"

"아... 아니. 난 루돌프 회장이 한 번이라도 날 찾아올 줄..."

"됐습니다. 그 곳에서 반성하고 계세요. 참고로 타즈나씨도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 말을 남긴 뒤 점점 멀어져 가는 '여제'에게, 이사장이 다급히 외친다.

"용서! 에어 그루브 부회장!!! 한 번만 봐주게!!!"

---⏰---

꿈을 꾸었다. 아주 즐겁고, 행복했던 꿈 같았는데, 잠에서 일어나 보니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슨 꿈을 꾼 것일까. 계속해서 되짚어 보지만 여전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무척 따뜻했던 꿈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루돌프는 기억이 나지 않는 꿈의 마지막여운을 느끼면서 옆자리를 보았다. 자신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루돌프는 약하게한숨을내쉬면서 잠을 자는 동안 눈에 맺혔던 눈물을 슬쩍 훔친다. 그런 뒤 자신이벗어두었던안경을 쓴다. 이어서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기억나지 않는 꿈에 취하여언제까지고 자리에 머물러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 일어났어?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아서 푹 쉬라고 깨우지 않고 먼저 일어났는데..."

아침에 잠깐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온 듯한 루돌프의 트레이너, 아니.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그리 묻는다. 루돌프는 그런 남편에게 싱긋 웃어보이며 대답한다.

"음. 덕분에 무척 잘 잤어. 배려에 감사한다.하지만 다음부터는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면 더 좋을 것 같군."

그러면서 덧붙여 이렇게도 말한다.

"...함께 몸을 담글 수도 있고."

"미안, 미안.료칸에는 이사장님이 사과의 뜻으로 전달한 여행권 덕분에 앞으로 3일은 더 묵을 수 있으니, 앞으로는 함께 일어나도록 하자."

루돌프가 팔짱을 낀 채로한숨을 내쉬었다.

"나 원, 그런 계획을 짜놓고서 고작 그 정도로 끝내다니. 내 아버님께서도 연관된 것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는 넘어가지 않았을 것을."

"그래도 이사장님도 확실히 반성은 하시는 것 같으니..."

"당신은 너무 물러... ...그것도 당신의 매력이지만."

그러면서 루돌프는 남편에게 다가가 그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피곤하지 않아? 지난 밤에... 힘을 많이 쓰긴 했잖아."

사실, 트레이너의 피곤의 기미가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다.루돌프보다 일찍 눈을 뜬 것도 피로를 완전히 회복한 덕이라기 보다는 그저 루돌프와 함께 트윙클 시리즈를 제패했던 당시의수면습관 때문이었다.그래도 트레이너는 자신의 아내의 걱정을 종식시키기 위해 모범답안을 내놓기로 했다.

"아. 나는 괜찮아.루나를 위해 밤늦게까지 트레이닝 메뉴와 향후 일정을짜던 때랑 비교하자면 이 정도야..."

실수였다. 그런 말을 해선 안됐는데.

"호오... 괜찮단 말이지."

루돌프의 눈빛이 일순간 변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트레이너는 방금 전 탕에 몸을 담그고 나온 것이 무색하게도 자신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루돌프는 남편이 무어라 대꾸키도 전에그의 가슴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키며, 그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그렇다면 오늘 밤에도... 잘 부탁해? 여보."

"그... 그럼. 물론이지. 루나."

트레이너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 뿐이었다. 그 대답에 루돌프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함께 식사하러 가도록 하자. 오늘 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으, 응..."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팔짱을 끼고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은, 누가 본다 하더라도영락없는 신혼부부의 모습이었다.

황제는 짊어진 소임을 위해 혼인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사랑을무조건 포기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소임과 사랑을 모두 취한 황제도 얼마든지 사례가 존재한다.

여기, 사랑하는 남편과함께 신혼여행을 즐기는'황제' 심볼리 루돌프는 소임과 사랑을 모두 거머쥔케이스에 해당한다.

---

예전에도 올렸었는데 그거에 비하자면 완성도랑 내용이 전체적으로 더욱 보강된 버젼.

말딸 괴문서) "황제는 짊어진 소임을 위해 혼인한다." (완전판) | 유머 게시판 | 루리웹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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